AppleTV: 디지털 미디어허브를 향한 발걸음

(맥마당 5월호에 실은 컬럼입니다.)

지난 80년대 말 MIT 미디어랩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책을 통해 ‘네그로폰테 스위치’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디지털이 주도할 미래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역설했다.

전통적으로 사적인 의사소통의 창구 기능을 했던 전화와 같은 미디어 는 유선에서 무선의 형태로, 대중매체의 큰 축을 형성하고 있는 TV나 라디오와 같은 미디어는 무선에서 유선의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예측한 것이, 그가 내다본 미래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주장이 낯설고 어색하지 않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그가 예측했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휴대전화는 빠른 속도로 유선전화를 몰아내고 있고, 공중파를 이용한 TV와 라디오는 고화질과 다양한 채널을 무기로 하는 케이블 TV와 인터넷 동영상, 인터넷 라디오, Podcast 등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미디어 변화의 중심에는 지금껏 애플이 있었다. 가히 혁명적이라 부를 만한 지난 몇 년간의 iPod 열풍은 오랜 시간 지속하여 왔던 ‘음악듣기’의 관습을 뿌리째 바꿔 놓고 말았다. 음악을 선택하고 구입하고 듣는 과정에서의 디지털 혁명이 이뤄진 것이다. 그 결과, 도시마다 음반판매점은 서서히 사라져 갔고, 자동차에는 이제 카세트 플레이어 대신 iPod 연결 단자나 MP3 플레이어가 자리 잡게 되었으며, ‘워크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제, 애플이 주도하는 디지털 미디어 혁명의 새로운 주자, Apple TV의 등장으로관심의 중심은 음악에서 영상으로, 오디오에서 TV로 이동하게 되었다.

AppleTV

애플의 디지털 미디어 전략
애플이 거실을 점령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디지털 미디어 허브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Mac 사용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비단 애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같은 회사도 비록 관점의 차이는 있지만, 디지털 미디어 허브 시장의 중요성을 꽤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인텔은 회사 성격에 맞게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하드웨어를 위한 플랫폼인 VIIV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소니는 PlayStation 게임기를 통한 가정용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다른 회사들보다 이 시장에 대한 참여가 빠른 편이어서 이미 Windows XP Media Center라는 운영체제를 통해 컴퓨터가 업무용 책상이 아닌 거실 한복판에 놓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Media Center 버전으로 구동되는 HTPC(Home Theater PC)도 이미 시장에 많이 나와 있다. 한편으로는 소니와 마찬가지로 XBOX라는 게임기를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삼으려는 실험 역시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미디어 허브 시스템을 겨냥한 애플의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iPod의 전략에서 보여준 것처럼 애플이 추구하는 방향은 항상 다른 회사들과는 달랐다. 다른 회사들이 기술중심 개발(Technology-centered Development) 전략에 치중한다면, 애플의 전략은 인간중심 개발(Human-centered Development)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경쟁 회사들이 MP3 플레이어에 보이스 레코딩 기능을 넣고, 라디오 튜너를 넣고, 이것저것 종합선물세트 식의 기능을 추가하는 동안 애플은 사람들이 디지털 음악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구매를 하며, 새로운 디지털음악 플레이어에 어떻게 담아 즐기는지에 초점을 맞춰 연구하고 개발했다. 그 결과는? 바로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iPod 열풍이다. 과거의 ‘워크맨’의 영광은 이제 ‘iPod’이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물론 iPod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iPod이 성공을 보장받으며 시장에 등장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다. 현재도 간혹 논란이 되는 음질 문제부터 가격과 배터리 문제, 가장 많이 공격을 당하는 ‘부족한 기능(?)’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iPod이 지적받았던 문제는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그리고 경쟁 제품 중에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훌륭하게 극복한 멋진 제품들이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iPod이 디지털 음악 시장을 평정한 이유는 바로 애플이 소비자가 구입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서비스’이고 ‘문화’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이러한 철학은 iPod의 연장선에 있는 Apple TV에도 잘 적용이 될 것이다. Apple TV는 이제 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고, 앞으로 힘겨운 상대들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과연, 애플이 추구하는 전략과 철학이 음악 시장을 넘어서 영상물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
하지만, iPod이 성공했다고 해서 Apple TV에 대한 전망까지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우선, 음악과 동영상은 소비 패턴이 무척이나 다르다. 음악은 소유의 개념이 강하고 반복적인 소비를 하지만, 동영상은 대개 일회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예이긴 하지만, 음반 판매점이 몰락한 이유를 MP3의 보급보다도 아마존닷컴과 같은 온라인 스토어나 월마트와 같은 대형 양판점에서 찾으려는 연구들이 있다. 그런데 이들 온라인 스토어, 대형 양판점은 음악 CD뿐 아니라 영상물을 취급하고 있음에도, 음반 판매점과는 다르게 비디오 대여점이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영상물이 가진 일회성 소비 패턴에 비디오 대여점이 판매점보다 더 부합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iTunes Store는 ‘판매’ 모델만을 가지고 있다. 이는 iTunes Store가 음악 시장에서 경쟁자들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요인이 되었지만, 영상물 시장에서도 똑같이 작용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영상물은 ‘소유’의 욕구가 음악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획일적인 ‘판매’ 모델은 영상물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부담스럽게 작용할 가능성도 충분히 존재한다. 따라서 애플은 영상물 소비자의 다양한소비 패턴을 고려해 ‘판매’뿐만 아니라 ‘대여’ 혹은 또 다른 형태의 모델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현재 Apple TV와 iTunes Store가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판매하는 동영상의 품질에 있다. 최근 몇 년간 HDTV의 수요는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더욱이 Apple TV를 구매한 고객들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적응이 빠른 얼리어댑터인 경우가 많아, HD급 TV 수신기의 보급률도 일반인들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애플이 현재 제공하는 영상물의 품질이 HDTV 해상도에 많이 못 미치는 까닭에 품질 문제가 Apple TV의 보급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사실이 문제는 네트워크 대역폭에 크게 좌우되는 문제이고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초고속 인터넷망이 잘 구축돼 있지 못하다는 점으로 미뤄 볼 때 애플이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압축효율이 높은 새로운 코덱을 개발하던가, 네트워크 유휴시간을 이용한 동영상 예약 다운로드, 혹은 Joost처럼 P2P 방식을 이용해 동영상을 전송하는 분산전송 기술을 도입하는 것 등이 애플이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그동안 애플이 잘 해왔던 것처럼) 사용자들이 동영상을 어떠한 방식으로 접하고 소비하는지에 대한 적절한 분석과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런 점이 바로 애플이 다른 경쟁업체보다 우위를 지키며 시장을 장악하는 비결이 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애플을 사랑하는 팬 입장에서 이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단 한 가지, 한국에는 여태 iTunes Store가 없다는 사실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루빨리 우리나라 노래와 영화, 드라마가 iTunes Store를 통해서, 그리고 애플의 디지털 미디어 허브를 통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 한류열풍을 이어나가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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