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마당 6월호에 실은 컬럼입니다)
지난 호에 우리는 Apple TV와 이를 바탕에 둔 애플의 미디어 허브 전략에 관해 자세히 살펴봤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애플의 다음 목표가 단지 미디어 시장에 대한 주도권 확보로만 끝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장대한 포부로 연결되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애플이라는 회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 1월에 열린 Macworld Expo 기조연설에서 스티브 잡스가 iPhone을 발표하며 회사명을 Apple Computer Inc.에서 Apple Inc.로 변경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컴퓨터로 시작한 회사가 이름에서 컴퓨터라는 단어를 빼버렸다는 것은, 앞으로 냉장고나 세탁기라도 만들겠다는 뜻인가?
다소 어이없기까지 한 이 공상에 대한 대답은 뜻밖에도 가까운 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얼마 전, 미국 가전제품 회사의 냉장고 부문 전략팀에서 근무하는 후배가 집으로 놀러 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그 후배는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자기 회사가 생각하는 가장 두려운 상대는 중국의 모 전자제품 회사와 바로 다름 아닌 ‘애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현재의 가장 큰 경쟁상대는 LG와 삼성 같은 국내 기업임도 빼놓지 않았다). 사실 가격을 무기로 하는 중국 기업이 가까운 미래에 기술력을 수반할 경우 매우 강력한 경쟁상대가 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애플이? 애플이 언제 냉장고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했던 적이 있었던가?
스마트 홈, 스마트 냉장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에 앞서, 우선 유비쿼터스 컴퓨팅이라는 연구 분야에서 자주 회자되는 ‘스마트 홈 컴퓨팅’에 관한 시나리오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유비쿼터스 컴퓨팅은 우리말로 ‘편재된 컴퓨팅’이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나 키보드로 무엇인가 명령하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아도 어떠한 일들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을 말한다. 말 그대로 컴퓨터가 우리 생활에 숨어드는 것을 가리키며, 이러한 기술의 근간에는 센서와 태그 같은 것들이 있다.
예컨대, 요즘 서점이나 슈퍼마켓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바코드는 태그와 관련한 대표적인 예이다. 과거에 서점에서 책을 판매하고 관리하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판매된 책들의 내역을 그때그때 장부에 정리하지 않으면 재고 관리도 쉽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얼마나 매출을 올렸는지 등을 계산하기는 더욱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바코드로 모든 책을 관리하기 때문에 판매와 함께 재고관리, 매출관리가 자동으로 이뤄진다.
만약 이러한 방식이 우리 생활 전반으로까지 확산된다면 과연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다시 냉장고 시나리오로 돌아가서, 혹여 냉장고에 저장되는 모든 음식물에 이런 ‘태그’가 부착된다면?
사실 이러한 연구는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이며, 언론에서 국내 가전제품 업체가 RFID 태그 리더가 달린 냉장고 시제품을 만들었다는 보도를 한 적도 있다. RFID 태그는 바코드와 마찬가지로 제품의 인식코드를 내장하고 있는데, 리더가 이 코드를 읽으면 해당 제품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바코드 방식은 적외선 인식장치가 바코드를 읽어야 하지만, RFID 방식은 리더가 읽을 수 있는 범위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그 제품의 ID를 인식한다. 따라서 바코드처럼 특정한 장치에 제품을 가져다 대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훨씬 간편하고, 냉장고와 같은 환경에 더 적합한 태그라고 할 수 있다.
이 RFID가 냉장고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물에 부착이 된다고 상상해 보자. 최근에 생산되는 모든 음식물들은 공장에서 출하되면서 바로 바코드가 부착되는데, 만약 바코드 대신 RFID가 부착된다고 한다면 음식물이 냉장고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냉장고는 이 음식물이 어떤 종류인지, 언제까지 먹을 수 있는지 등의 정보를 곧바로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냉장고 앞에 달린 디스플레이는 현재 냉장고 안에 어떤 음식물들이 들어 있는지, 그리고 그들 중 유효기간이 지나 버려야 하는 것들로는 무엇이 있는지를 쉽게 표시해 줄 수 있게 된다. 이 정보가 ‘요리백과’ 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된다면 더욱 멋진 시나리오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저녁에 김치찌개를 해 먹기로 결정했다면, 냉장고가 현재 보관 중인 음식물 내용들을 검색해서 “두부가 없으니 퇴근길에 두부를 사가지고 가라”고 알려줄지도 모른다. 장을 보러 가는 것이 귀찮다면,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음식물만 가지고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추천해 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냉장고는 휴대전화에 부착된 GPS를 통해 가족들이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만일 가족 중 한 사람이 슈퍼마켓 근처에 가게 되면 그 사람의 휴대전화로 이러 저러한 재료들을 사가지고 오라는 메시지를 보내 줄지도 모른다. 이 멋진 시나리오는 SF 영화에 나오는 모습이 아니라 앞으로 5년 혹은 10년 뒤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이미 기술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iPhone의 핵심은 Mac OS X의 영역확대
그런데, 이 시나리오는 간과한 점이 하나 있다. 냉장고를 거대한 RFID 리더로 만들고, 모든 음식물에 RFID 태그를 붙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면서 사용자에게 스크린을 통해 정보를 보여주고, 네트워크를 통해 휴대전화와 같은 다른 기기와 통신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센서나 태그와 같은 하드웨어 기술들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운영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뛰어난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안정성을 보여준 Mac OS는 어쩌면 이런 환경에 가장 적합한 운영체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지난 1월 Macworld Expo에서 발표된 iPhone의 무서운 점은 어쩌면 iPhone이 보여주는 화려한 디자인이라던가 멀티터치를 사용한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바로 Mac OS X을 또 다른 새로운 플랫폼으로, 그것도 휴대용 기기를 위한 임베디드 OS 플랫폼으로 성공적으로 이식한 것이 바로 iPhone이 가지는 무서운 점이 아닐까 싶다.
지난 일년여 간 PowerPC 프로세서에서 벗어나 인텔 프로세서로 이주하면서 애플은 Mac OS를 다양한 플랫폼에 적합한 운영체제로 탈바꿈시켜 왔다. 이제 iPhone을 계기로 Mac OS의 적용 범위를 ARM과 같은 휴대용 단말기나 가전제품 등에 사용되는 CPU에까지 넓히게 된다면, Mac OS X은 비로소 컴퓨터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벗어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애플이 차세대 운영체제인 Mac OS X v10.5 Leopard를 연기하면서까지 iPhone 운영체제 개발에 매달리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임베디드 OS 시장도 무주공산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 시장에 적극적이었고, Linux나 여타 다른 운영체제들도 그 중요성을 깊이 깨닫고 있다. 실제로 업계 동향을 들어보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미 Windows를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에 적용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고 한다.
Apple iRefrigerator?
그렇다면, 이제 처음 질문에 대답해 보자. 과연 ‘컴퓨터’라는 단어를 회사 이름에서 떼어내 버린 애플은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에까지 손을 댈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애플은 여전히 컴퓨터와 운영체제를 잘 만드는 회사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가 우리 일상사에 깊숙히 파고들어가는 지금, 애플이 생각하는 컴퓨터가 책상 위에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냉장고를 사러 백화점에 갔을 때 ‘Mac OS X Powered 냉장고’와 ‘Microsoft Windows Powered 냉장고’를 놓고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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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깨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