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페이스의 진화

(맥마당 8월호에 실은 컬럼입니다.)

업계 최초로 마우스를 장착하고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선보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컴퓨터를 기억하는가? 다름 아닌 Apple의 Lisa다. 이 컴퓨터를 1983년에 애플이 처음 선보였을 때만 하더라도 미래의 인터페이스가 마우스로부터 시작하리라 예측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Lisa는 비싼 가격에 비해 떨어지는 업무능력으로 비판받으며 결국은 값비싼 장난감으로 폄하되어 시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Lisa가 보여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이것을 조작하고자 개발된 마우스라는 장치는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결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비록 애플이 일반 대중에게 마우스를 가장 먼저 소개했으나, 그렇다고 최초로 개발한 것은 아니다. 최초의 마우스는 그보다 20여 년 전인 1964년,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원 더글러스 엔겔바트가 개발했다. 마찬가지로, 애플이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또한 그 뿌리는 1963년 이반 서덜랜드의 MIT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스케치패드(Sketchpad)에서 찾을 수 있다.

Apple Lisa and the first mouse by Douglas Engelbart

대학 연구실에서 시작한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대한 연구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 Xerox의 PARC (Palo Alto Research Center)를 거쳐 좀 더 다듬어진 형태로 발전하다가 80년대에 이르러 애플이 소비자를 위한 제품으로 만들면서 대중에게 소개된다. 흔히 애플을 공격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애플이 GUI를 Xerox PARC에서 훔쳐서 매킨토시를 만들었다’는 말은 결국 사실이 아닌 셈이다. 아이콘과 윈도우, 마우스 등을 사용하는 미래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학계 연구는 훨씬 이전부터 있었으며, 제록스 PARC나 애플도 그러한 연구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었던 것이다. 다만, Xerox PARC에서 계속 연구 상태로 머물러 있던 것을 애플은 상업화했다는 데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들에 대해서 무지했던 스티브 잡스가 Xerox PARC에서 GUI를 장착한 Alto라는 컴퓨터를 보고 영향을 받아 Lisa를 개발했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해서 애플이 무조건 Alto를 베꼈다고 주장할 수도 없다는 것이 필자 생각이다. 오히려, 애플은 연구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제반 기술들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들었다는 측면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iPhone의 멀티터치 인터페이스

지난 1월, iPhone이 공개된 이후로 불어닥친 멀치터치 인터페이스에 대한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처음 탄생했을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 보게 한다. 사실 멀티터치 인터페이스도 애플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로부터 나온 것은 아니다. 관련 학계는 꽤 오래전부터 다양하고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iPhone의 멀티터치 인터페이스 또한 그러한 연구물들 중 하나를 상업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것일 뿐이다.

이러한 미래형 인터페이스 연구가 지향하는 바는 탈(脫) PC에 있다. 현재의 컴퓨터는 본체와 모니터(출력), 키보드(입력)라는 세 가지 요소를 기본 구조로 하고 있고 이동성을 가진 노트북 컴퓨터라고 할지라도 이 틀은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요즘 많이 회자되는 유비쿼터스 컴퓨팅 연구들을 보면, 이와 같은 구조적 한계에서 탈피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꼭 사각형 모양을 한 모니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서는 커피 테이블이나 벽, 문, 심지어는 수조 등에서도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키보드나 마우스와 같은 입력 장치도 무언가 새로운 형태를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오래전부터 꾸준히 연구돼 온 음성 인식은 물론이고, 얼굴 표정이나 손의 제스추어와 같은 것들이 입력 장치로 연구되고 있다. 몇 해 전,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탐 크루즈가 선보였던 인터페이스는 제스추어 인터페이스의 좋은 예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뿐만 아니라 ‘스타트랙’ 과 같은 SF영화에서 볼 수 있는 미래형 인터페이스가 바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나 마우스 등의 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런 연구들이 연구실 밖으로 벗어나 실제 제품화가 되고 사용자의 손안에 쥐어지기까지는 넘어야 할 장벽이 꽤 많다. 가격이나 생산 문제와 같은 현실적인 부분도 있지만, 연구자들이 사용자의 취향이나 기술 이해도의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패하는 경우도 적잖이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실제로 이뤄지는 연구들에 비하면 비록 보잘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애플이 iPhone에 채택한 멀티터치 인터페이스 기술은 옛날 애플이 연구실에서 뒹굴던 마우스를 소비자들에게 선보였을 때만큼이나 매력적이라는 생각이다. 기술적으로 대단히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미래의 기술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일반 대중에게 통찰력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Surface 테이블 컴퓨터

이러한 분위기에 발맞춰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Surface라는 테이블 컴퓨터도 무척 기대되는 제품이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할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이 제품은 미래의 인터페이스 전쟁에서 애플에 주도권을 빼앗긴 마이크로소프트가 마케팅 측면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고자 내놓은 제품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Surface에 쏟아진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iPhone과 마찬가지로 Surface에 사용된 기술들도 그다지 새로운 것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Surface는 iPhone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멀티터치 인터페이스가 어떻게 미래의 컴퓨팅 환경을 바꿀 수 있는지를 직접 보여주었다. 미래의 기술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과 이해를 높여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경쟁은 매우 바람직하다.

MS Surface

재미있는 점은 이 두 제품을 통해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애플은 제품이 출시되기 전 엄청난 보안을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애플은 한 번도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관련한 학술대회 등에서 논문을 발표한 적이 없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다시피 애플이 소개하는 기술들도 그다지 새로운 것들은 아니다. 그럼에도, 애플은 소비자에게 어떻게 기술을 전달해야 하는지를 안다. 그것은 바로 애플의 연구가 기술 개발 그 자체에 있지 않고, 사용자의 이해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수많은 연구를 공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간의 비난과는 다르게 엄청나게 많은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이다. 이번에 공개한 Surface 테이블 컴퓨터가 보여주듯이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동안 미래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개발하고자 쏟은 노력 역시 대단하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술이 사용자에게 전달되었을 때,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를 애플만큼 모르는 것 같다. 사용자에 대한 이해보다는 마케팅 측면에서의 기술 개발에 보다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닐까?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진화

이제 바야흐로 개인용 컴퓨터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또 한 번 진화하는 시기가 도래한 느낌이다. 기존의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직관을 통한 사용의 편리함에 초점이 맞춰져 개발됐다면, 미래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인간의 오감에 의존한, 즐거움을 주는 인터페이스가 되지 않을까 한다. 지난 몇 주간 iPhone을 만져보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촉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iPhone에 포함된 iPod에서 음악을 듣고자 앨범 사진을 손가락으로 넘기면서, 오래전 LP판을 꺼내서 넘기는 기분을 느꼈다. 이렇듯, 앞으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사용자의 경험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다. 컴퓨터가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이제 여가활동을 포함한 생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이런 사용자의 다양한 경험을 지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미래의 인터페이스에 대한 연구가 연구실을 벗어나 사용자에게 다가가려면, 그것이 단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쓰고 즐겨야 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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