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미니멀리즘

(맥마당 9월호에 실은 컬럼입니다.)

굳이 전원을 켜고 iPhone의 미려한 인터페이스를 바라보지 않아도 iPhone을 손안에 쥐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미묘한 즐거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반짝이는 사각 평면의 까만 스크린 그리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크롬 질감의 프레임. 가늘게 패인 스피커를 위한 구멍과 본체와 우아하게 어우러지며 오목하게 살짝 파고든 버튼. 달리 특별한 것도 없는 납작한 육면체임에도, iPhone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한한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된다. 바로 iPhone이 주는 간결함의 미학에 빠져드는 것이다.

애플은 오래전부터 ‘간결한 제품디자인’을 회사의 전통으로 만들어 왔다. 1987년에 선보인 Macintosh II는 애플의 이러한 전통의 시발점이 된 컴퓨터로 볼 수 있다. Frog Design이라는 유명한 제품디자인 회사에서 디자인한 이 컴퓨터는 단순하고도 기하학적인 육면체의 베이지색 상자를 컴퓨터의 본체로 선보였다. 칼로 자른 듯한 직선이 주는 단정함은 당시 여타 IBM 호환 PC들의 조잡하고 산만한 디자인과는 다른 획기적인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필자의 지인들이 처음 이 컴퓨터를 접했을 때 디스켓 삽입구를 찾지 못해 당황해 하던 일들이 생각이 난다. 그도 그럴 것이, IBM PC 계열의 컴퓨터처럼 디스켓 삽입구가 움푹 파여 강조돼 있지도 않고, 디스켓 추출을 위한 커다란 버튼이 존재하지도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의 이러한 전통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애석하게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떠나있었던 시간 동안, 애플의 제품디자인은 여타 다른 컴퓨터의 디자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도 기억하는 Quadra 기종의 애매한 유선형 디자인은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을 반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애플이 추구해왔던 간결함의 미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특히, 애플이 컴퓨터 호환 사업을 할 당시에 써드파티 업체에서 출시했던 Mac 호환 기종들은 차마 바라보기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하면서 예전의 전통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직도 많은 매킨토시 팬들을 열광하게 하는 Power Mac G4 Cube의 디자인은 전통으로의 복귀를 선언한 디자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고, 그 이후에 출시된 모든 제품 역시 iPod에서 데스크탑 기종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애플의 간결함의 미학을 따르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이 간결함의 미학은 애플보다는 스티브 잡스 개인이 추구하는 바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애플을 떠난 동안 운영했던 넥스트컴퓨터의 제품들도 역시 간결함의 미학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도 이런 생각을 강하게 뒷받침해준다.

애플의 미니멀리즘 철학

미학(美學)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로 이 간결함의 원칙을 우리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라고 부른다. 미니멀리즘은 시작은 산업혁명이 이루어지고 공장에서 제품들이 대량생산되기 시작한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디자인이라는 영역은 무척 생소한 것으로서 디자이너들은 수공예가 가진 여러 가지 전통으로부터 그들 스스로를 분리함으로써 차별화하려고 노력했다. 새롭게 등장한 ‘기계 시스템’이 주는 구조적인 기능성에 강하게 매료되었던 19세기 디자이너들은 수공예에서 흔히 제품을 꾸밀 때 사용하는 기능성과 상관없는 ‘장식’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하여 디자인에서 제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당시 수공예를 통해 제작되었던 주전자, 책상, 의자 등과 같은 생활제품들은 그것이 가지는 일차적인 기능성과는 무관하게 꽃무늬나 나무줄기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돼 있었다. 이들 ‘장식’은 대량생산을 통해서 제작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제품이 가지는 일차적인 기능, 개념, 목적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간주한 이 시대의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에서 장식을 제거함으로써 수공예와 차별화를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모던 디자인이 형성되기 시작할 무렵 이러한 기능성 위주 디자인의 전통은 모든 디자이너들의 정신적이 바탕이 되었고,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바탕을 이루게 된다. 일반인이라도 흔히 한 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할 모던 디자인의 모토인 ‘작은 것이 아름답다(Less is More)[1]‘라는 문구는 미니멀리즘 정신을 가장 완벽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불필요한 장식을 제거하고 가장 완결한 형태의 기능성 간결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 모토가 주는 정신은 바로 여태껏 애플이 추구해왔던 바로 그 철학이다.

애플의 미니멀리즘 정신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모습과 흡사한 점이 있다. 과거, 산업혁명의 전도사들은 ‘기계’가 우리 생활에 끼친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실제로, ‘기계’는 인간사회의 정치, 경제, 철학, 예술, 사상 등 모든 분야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전제 왕권이 무너지고, 시민사회와 인권이 성장하고, 대량생산을 통해 예술을 귀족이 아닌 일반인도 향유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극심한 변화의 중심에서 산업혁명의 전도사들이 ‘기계’가 주는 일차적인 기능성과 목적에 심취되어 그 외의 불필요한 것들을 배척하고 ‘기계’자체가 주는 미적인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기계’의 위치에 바로 ‘컴퓨터’가 있다. 19세기에 ‘기계’가 했던 역할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컴퓨터’는 여러 면에서 우리 사회를 바꾸고 있다. 컴퓨터 덕택으로 사회는 더욱더 민주화되고 있으며, 정보나 문화의 생산이 거대 자본에서 다양한 개인으로 분산되는 등, 정치, 경제, 철학,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컴퓨터의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컴퓨터 혁명’의 일등공신으로서 애플은 스스로 19세기 산업혁명 전도사와 같은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런 애플이 과거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컴퓨터 자체가 주는 미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하고자 모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는 미니멀리즘 철학을 고수하는 것은 역시 지극히 당연한 모습으로 보인다. 어쩌면 제품 소개를 위한 기조연설을 할 때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가 자신이 소개하려는 그 멋진 ‘컴퓨터’의 불필요한 장식이 되는 것이 싫어서 항상 까만 터틀넥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등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니멀리즘의 이후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미니멀리즘도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람들은 미니멀리즘의 전통에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장식’을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한 모던 디자인에 대한 반박이 나타나면서, 또다시 장식을 디자인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이러한 노력은 과거 모던 디자이너들이 가졌던 강력한 도덕적, 철학적, 정치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는 듯하지만, 이를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은 19세기에 기계가 주었던 순수한 이상과 목적이 이미 우리 사회에서 많이 스며들어 편재돼 있어서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처럼 기계가 주는 가치를 더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혁명도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
다. 어쩌면 몇 십년 후, 아니 백년쯤 지난 후에 우리의 후손들은 애플의 디자인이 얼마나 심심하고 밋밋한지를 두고 논쟁을 벌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21세기 초반을 살고 있는 나는, 현재 내 손안에 꼭 쥐어진 iPhone의 너무나 간결하고 절제된 디자인에 푹 빠져든다. Less is Still More.

[1] Less is More는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라는 건축디자이너가 처음 사용했는데, 우리말로의 해석은 그 문구가 어디에 사용이 되느냐에 따라 다양하다. 미학 쪽에서는 ‘적을수록 많다’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2 Responses to “애플과 미니멀리즘”

  1. monomato says:

    처음엔 저는 아이폰 이미지를 삽입했었는데 나중에 편집장님이 멋진 큐브 이미지를 주셔서 큐브 사진으로 대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준환님의 칼럼은 맥마당의 기사가 아닌 맥마당 잡지로 만나볼 수 있겠군요 ^^

  2. joonhwan says:

    안녕하세요… 다른 곳으로 옮기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맞나요? 새 직장에서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 그동안 허접한 글을 멋지게 편집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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