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강국의 두 얼굴

(맥마당 12월호에 실은 컬럼입니다.)

미국에 살다가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잘 갖추어진 엄청난 속도의 인터넷 네트워크망에 감탄을 하게 된다. 지금은 미국도 제법 많은 발전을 이룩해 그 차이가 현저하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불과 4~5년 전만 해도 미국은 모뎀 사용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인터넷 서비스 또한 그다지 다양하지 못했었다. 반면, 한국은 이미 오래 전부터 빠른 인터넷망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서비스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광고 속 표현대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초고속 네트워크망은 정말 우리나라가 IT 최강국이구나 하는 뿌듯함을 가지게 했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는 증거는 비단 네트워크 속도 때문만은 아니다. 선명한 화질의 HD 방송이 어느 나라보다 먼저 서비스되고, 3G니 4G니 하는 휴대 전화 기술, DMB나 Wi-Bro 같은 첨단 기술들이 앞서 개발되고 테스트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GizmodoEngadget 같은 새로운 기술과 제품들을 다루는 웹 사이트를 방문해 보면 한국에서 이런 최첨단 기술들이 개발되고 서비스되는 상황에 부러움을 표하는 댓글들도 많이 눈에 띈다. 자, 이쯤 되면 한국은 정말 IT 산업을 이끄는 선두주자라는 타이틀에 손색이 없다.

또다른 모습

그러나 그 속을 실제로 들여다 보면, 이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IT 산업이 하드웨어 쪽으로는 진일보한 반면, 소프트웨어 쪽은 한참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재 Mac OS X이나 Linux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편향의 웹 서비스도 그 중 하나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Windows나 Internet Explorer를 쓰지 않는 사용자들은 온라인 뱅킹도 할 수 없을뿐더러, 공공기관의 웹 사이트 게시판에 글 하나 남기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공공기관의 서비스가 이러할진대 상용 서비스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온 국민이 이용한다는 싸이월드나 포털의 뉴스 서비스를 Mac OS X이나 Linux에서 접하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거나 아예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불편쯤은 어쩌면 찻잔 속의 먼지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이 전 세계를 상대로 내세울 만한 특별한 기술이 없다는 점이다.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DMB나 Wi-Bro 같은 기술이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표준으로 채택되기도 한다. HDTV와 관련된 특허 기술의 많은 부분을 한국 기업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 쪽으로는 마땅히 내세울 만한 것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하다못해 웹 사이트를 개발하는 기술만 하더라도 ASP와 PHP, Java 등 모두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들이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어떤가? 지난해부터 돌풍을 일으켰던 Ruby on Rails라는 웹 프레임워크 기술의 핵심인 Ruby라는 언어는 바로 일본에서 개발된 것이다. 일본의 소프트웨어 산업 전반에 대해 그리 잘 아는 편은 아니지만, 이런 프로젝트가 그것도 오픈 소스의 형태로 가능하다는 것은 일본의 소프트웨어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와 있음을 반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개발자들의 실력이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나라에는 소프트웨어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훌륭하고 좋은 개발자들이 많이 있고, 그들 중 다수가 외국의 유명 기업들에서 일하고 있다.

그렇다면, IT 강국이라는 한국이 왜 소프트웨어 쪽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우선 첫 번째 이유로는 정부 투자가 지금껏 하드웨어 쪽으로 편향돼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무래도 한국은 성장기를 거치면서 기계나 전자 위주의 하드웨어 산업(제조업) 관련 기술들만 집중적으로 개발하면서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던 탓에 지원이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다. 소프트웨어는 대개 하드웨어에 딸려오는, 하드웨어를 구동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보니,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투자를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소프트웨어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제품’으로 이해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컴퓨터 사용자의 상당수는 여전히 컴퓨터를 구입하게 되면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것이 소프트웨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로는 소프트웨어 시장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자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은 웹 사이트 개발자 혹은 (온라인 중심의) 게임 개발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시장은 경쟁이 심하고, 유행에 민감해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제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 결국, 개발자들의 기술 개발 의욕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어떻게든 있는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것들을 빨리 만들어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관련업계 종사자들 사이에는 팽배해 있다. 앞서 언급한 마이크로소프트 편향의 웹 서비스 문제 역시 이러한 이유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무리 뛰어난 멀티 플랫폼 기술이 새로 나왔다손 치더라도 시간싸움을 하는 개발자들은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버릴 수가 없다. 결국, 한번 익숙해진 마이크로소프트 솔루션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오픈 소스 정책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은 점점 더 외국 기술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에 종속돼 있을 만큼 종속돼 있어서 하루속히 이런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지원하고 육성해야 한다.

보도에 의하면, 정부 부처가 한 해에 Microsoft Office와 Windows 구입비용으로 지출하는 예산은 2002년 기준으로 무려 700억에 다다른다고 한다. 이를 만약 Linux 플랫폼으로 바꾼다면 정부는 한 해에 600억을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게 해서 절약한 돈은 오픈 소스 프로젝트를 육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절약한 예산을 비 전문가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Linux 데스크탑을 개선하거나 우리 환경에 맞는 오피스웨어를 개발하는 데 투입한다면 많은 돈을 절약하면서도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할 수 있고, 아울러 우리나라 컴퓨터 시장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조금이라도 덜 종속되도록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소프트웨어 시장은 경험이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다. 기술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소프트웨어를 버리고 다른 것을 쓰게 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은 독점적 구조를 갖추고 있다. 소프트웨어 후발 국가 입장에서는 세계 시장 진입 가능성은 물론이고 국내 시장을 형성하기조차 쉽지 않다. 따라서 만약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거대 기업을 능가하는 기술이나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면 차라리 오픈 소스를 통해 소프트웨어 산업을 육성하는 편이 옳다고 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많이 사용하는 Windows 기반 환경에서는 사실 소프트웨어 원천 기술의 확보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소프트웨어의 아키텍처나 소스 코드 어느 하나 공개돼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픈 소스는 원천 기술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매우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아쉬운 점은 이런 주장이 수년간 지속돼 왔음에도, 오픈 소스 커뮤니티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오픈 소스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어도 그에 따른 보상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티스토리(TISTORY)나 제로보드와 같은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지원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지원이 더욱 체계적으로 정부나 대기업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우리나라 오픈 소스 커뮤니티도 충분히 활성화될 것이고, 소프트웨어 산업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IT 강국 성공신화가 절반의 성공으로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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